글/김부장의事記

1-1. 일을 하는 이유

김진영(에밀) 2022. 3. 19. 00:1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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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기(事記)'는 '일'에 대한 기록입니다. 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. '작업 그 자체'와 '(작업이 이뤄지는) 위치와 역할'입니다. 영어로 보면 'work'와 'job'의 차이죠. 둘 다에 대해 얘기하렵니다. 일을 해나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리더십, 소통, 정치 같은 영역도 담고 싶습니다. 여러 명의 김 부장이 등장할 예정입니다. 이전 연재 <팀장으로 산다는 건>과 같이 많은 관심과 댓글을 부탁드립니다.


연초 싸라기눈이 내린 어느 날, 김 부장은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내리며 일과를 시작한다. 오전 일곱 시, 사무실엔 아직 아무도 없다. 그는 조용한 이 시간을 좋아한다. 오롯이 사무실의 모든 기운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.

​직장생활 어언 23년, 팀장을 거쳐 실장까지 오르게 됐다. 아직 정식 임원은 아니지만,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. 숱한 동료가 회사를 떠났고,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이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.

​오늘은 그룹에서 새로운 장기 목표가 하달되는 날이다. 그래선지 출근하는 관리자들 얼굴에서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. 회사는 창사 후 10년간 매년 20% 넘는 성장을 거듭했다. 하지만 최근 3년간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. 산업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경쟁사 역시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. 장기 목표는 분명 숫자를 던져줄 것이기에 묘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음을 김 부장은 느끼고 있었다.

​오후 2시, 김 부장은 상사인 상무와 함께 그룹 본사 미팅에 참석했다. 그룹 비서실의 지시는 향후 5년간 무조건 매년 25%씩 매출을 늘리라는 것이었다. 그래야 그룹의 재계 순위를 고수할 수 있다고 했다. 즉, 회장님의 위신이 걸린 문제라는 거였다. 순간 실소가 삐죽 나왔지만 크게 내색할 순 없었다. 각 계열사에서 모인 수십 명의 전략 담당 임원과 담당자들은 마른 침을 꿀덕꿀덕 삼킬 뿐 한없이 진지했다.

​“상무님, 이게 말이 됩니까?”

​김 부장이 본사 건물을 빠져나오며 상무에게 말을 던졌다. 한동안 말이 없던 박 상무가 짜증을 내며 대답한다.

​“야! 그냥 해. 달성한다는 계획을 만들어 오라고!”

​‘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나?’김 부장은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 했는데, 돌아오는 건 핀잔뿐이었다. ‘상무님은 무조건 하라고만 하는군. 아… 이걸 직원들한테 뭐라고 설명한다?

​

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

회사로 복귀하는 내내 김 부장은 두통을 느꼈다. 상무처럼 그냥 지시만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. 실장이었지만 밑에 팀 하나의 팀장 역할까지 겸임하고 있었기에 완전 실무형이었다.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챙길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. 두 팀장과 선임 직원 셋을 불렀다.

​“아니, 그게 말이 됩니까?”

“죽을 둥 살 둥 영업해도 이제는 5%를 성장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!”

“실장님께서 막아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?”

​김 부장은 이럴 때가 제일 힘들다. 중간관리자의 숙명이라지만, 허망한 상부 지시를 밑에 설득해야 하는 것이 임원에게 깨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.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. 한번이야 억지로 일을 하게 할 수 있다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 관리 체계가 무너진다. ‘상무처럼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건 리더의 모습이 아니야’ 생각하며 김 부장은 팀장들과 팀원들 설득에 나섰다.

​“여러분 생각을 모르진 않아요. 하지만 이번 지시는 그룹 차원에서 전 계열사에 동시에 하달된 내용이에요. 무조건 달성해야 하는 거죠. 이건 우리 회사의 명운과도 관련 있는, 10년에 한두 번 있을까 한 결정이란 겁니다. 이 팀장, 우리 그룹 캡티브(그룹 계열사간 거래 물량)가 지난 해 몇 퍼센트였죠?”

​“결산이 완료되진 않았지만, 대략 35% 정도입니다.”

​“우리가 그룹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부합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. 우린 경쟁사 대비 캡티브가 적다고는 하지만 35%는 우리가 사업을 유지하는 기본 베이스에요. 다른 측면도 생각해보세요. 우리 그룹 물량도 커버 못 하면서 다른 그룹사에 제안하는 게 씨알이 먹히겠어요?”

​“지난번에도 설명했지만, 우리 사업에 대해 다른 계열사도 관심이 있습니다. 이건 그룹 내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. 애초에 그런 소지를 없애려면 그룹 의도에 적극적으로 부합할 필요가 있습니다.”

 

​이유 다음은 일의 방향이다

한 시간이 넘는 회의에서 김 부장은 현재 위치와 미래 위험에 대해 말하면서 이번 5개년 계획 수립 일의 정당성을 설파했다. 가장 선임인 이 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.​

​

“실장님 말씀은 이제 알겠습니다. 그룹 내 우리 상황에 대해서 쉽게 간과한 부분이 있었습니다. 다만, 무작정 계획을 뜬구름 잡는 식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잖습니까?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전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.”

​“우선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. 이 팀장 말이 맞아요. 이제는 어떻게 작성할 건지 방향을 정해야 해요. 나 역시 어떻게 25%씩 매년 성장시킬지 이거야~ 하며 뚜렷이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. 솔직히 말이죠.”

​“그래서 우선은 기존 전략을 고수하면서 취급 품목을 늘린다는지, 판매방식을 변형하는 식으로 작은 변화 위주로 시나리오를 먼저 짜보도록 합시다. 그걸 베이스라인으로 잡고 나머지 갭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생각해봅시다. 다행히 연말 제출이니 시간은 있다고 봐야겠죠. 함께 고민하면서 진도 나갑시다.”

​“이 팀장이 연말 제출 시한까지 대략적인 일정과 주요 마일스톤(이정표가 되는 주요 이벤트)을 짜서 공유합시다. 우선 기존 성장전략은 1개월 안에 작성하도록 하고요. 복잡하게 PPT로 만들지 말고, 5개년 매출 예측 위주로 짧게 작성해봅시다.”

 

​(2화에서 계속)
https://leadersclub.tistory.com/119

팀장들을 겨우 설득시켜 5개년 계획을 수립해가는데… 현실과 목표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큰 상황에서 김 부장이 내린 결단, 그리고 내부 보고회의에서 벌어진 황당한 해프닝이 의미하는 바는…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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